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순방시 한국지엠의 통상임금 사건에 대하여 해결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대통령의 처신부터 통상임금 법리의 타당성까지 말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가 지난달 말에 나왔는데요,
대법원의 판단은 한국지엠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것은 맞으나,
이에 대하여 소급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할 여지가 있으므로,
이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심리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법원 2014. 5. 29. 선고 2012다116871 판결)
통상임금이란
통상임금이란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근로인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기로 약정한 금품입니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시간외 수당 등), 해고예고수당, 연차휴가수당 등의 산정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통상임금의 정의를 충족하는지 여부는 임금의 지급방식, 형태가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여부로 판단합니다. 통상임금인지 여부는 노사간에 다툼이 있으므로, 실제 지급되는 방식을 보고 통상임금인지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정기적인 임금 – 일정 간격 두고 계속적 지급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을 의미합니다.
정기상여금과 같이 일정한 주기로 지급되는 임금(가령 2개월에 한 번, 분기에 한 번, 반기에 한 번, 설과 추석에 각 한 번)의 경우라도, 그 지급주기가 1개월을 넘는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되지는 않습니다.
고정적인 임금 – 하루의 근로에 대하여 확정적으로 지급받는 임금
고정적인 임금이란 임금의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시간을 근무한 근로자가 그 하루의 근로에 대한 대가로 당연하고도 확정적으로 지급받게 되는 최소한의 임금을 말합니다.
근로자가 그 다음 날 퇴직한다 하더라도 지급받는 액수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야 고정적인 임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예정되어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된 임금은 고정성을 갖춘 것으로 봅니다.
고정성에서 말하는 조건이란 – 확정되어 있지 않은 조건
고정성에서 말하는 조건은,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 그 성취 여부가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은 조건을 말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미 확정되어 있는 조건이라면 고정성을 갖춘 임금이라고 판단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지요.
가령 특정 경력(자격증 보유자), 일정 근속기간(3년 이상 근속자)에 이를 것 등과 같이 위 시점에 그 성취 여부가 이미 확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고정성 인정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확정되지 않은 조건의 예 – 재직중인 근로자에 한하여 지급하는 임금
지급일 기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는 임금은 그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일 것이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이 되는바, 그러한 임금은 기왕에 근로를 제공했던 사람이라도 특정 시점에 재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급하지 아니하는 반면, 그 특정 시점에 재직하는 사람에게는 기왕의 근로 제공 내용을 묻지 아니하고 모두 이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러한 경우에는 고정성을 결여한 것으로 봅니다.
한국지엠의 상여금과 각종수당의 경우
상여금은 근속기간 연동 – 고정적인 임금
한국지엠은 근속기간이 1개월 이상인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2월, 4월, 5월, 6월, 8월, 10월, 12월 말일에 노사합의로 약정한 기준임금을 기초로 산정한 이 사건 정기상여금을 지급하면서,
근속기간이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인 근로자에게는 지급액의 50%, 근속기간이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인 근로자에게는 지급액의 70%, 근속기간이 6개월 이상인 근로자에게는 지급액의 100%를 각 지급하였습니다.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보면 위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합니다.
개인연금보험료, 휴가비, 귀성여비, 선물비는 통상임금 아닐 수도
위 돈들은 재직 중인 근로자들에게만 지급하기로 하였거나 지급하여 왔던 관행이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고등법원에서 다시 심리하라고 파기하였습니다).
통상임금에 해당하더라도 신의칙 위배 여부 따져봐야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이란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추상적 규범을 말하는 것으로서,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그 권리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고
이와 같은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신의칙이란 민사법의 대원칙 중 하나입니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었으면,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상임금 사건에서도, 근로자측(노조측)이 사용자에게 정기상여금 등을 각종 법정수당 산정의 기초가 되는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합의해 주어 사용자측이 이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한 뒤, 이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계산한 법정수당을 청구하는 것(이미 지급받은 것과의 차액을 청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른다면 신의칙 위배가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강행규정이 적용되는 분야에서 신의칙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치열한 다툼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분석한 제 글 “통상임금 2013년 최고의 화두”편을 참고하세요)
강행규정 위반시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는 경우
원칙적으로 적용이 불가한 것이 원칙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에,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으로 정한 입법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그러한 주장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음이 원칙이다.
특별한 사정 있는 경우는 가능
위에서 본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춤은 물론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하는 것을 수긍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 그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
강행규정 위반하여 무효를 주장하는 경우, 무효라는 주장을 신의칙에 위배되었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이는 강행규정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원칙적으로 신의칙 항변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이에 대한 예외를 두었습니다. 예외에 해당하는 특별한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의칙 적용을 위한 특별한 사정
임금협상 관행 – 총액중시
노사가 상호 적정하다고 합의한 범위에서 임금 총액을 정하고 이를 기초로 임금협상을 하는 경우, 그 임금 총액 속에는 기본급 및 정기상여금, 각종 수당, 그리고 통상임금을 기초로 산정되는 법정수당까지 그 규모를 예측하여 포함시킵니다. 즉, 어떤 항목으로 받는지는 중요치 않고 총액을 중시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방식의 임금협상에 따르면, 기본급, 정기상여금, 각종 수당과 통상임금을 기초로 산정되는 법정수당 등은 임금 총액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사 간에 합의된 임금 총액의 범위 안에서 각 임금 항목에 금액이 할당되고 그 지급형태와 지급시기 등이 결정되게 됩니다.
즉, 정기상여금 등으 통상임금의 기초가 되는지에 대하여는 애초에 노사양측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 기존 실무 관행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에서는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임금협상 시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는 실무가 일반화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상여금 연원
상여금의 연원은 은혜적·포상적인 이윤배분이나 성과급이라고 보았습니다.
상여금이 근로 대가 아닌 경우도 많아
(한국지엠처럼)상여금이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성과급이나 공로보상 등의 차원에서 지급되는 경우도 있고 그 성격이 명확하지 아니한 경우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고용노동부 통상임금 산정지침은 정기상여금 배제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이 1988년 1월 제정된 이래 일관되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여 왔습니다.
대법원도 최근에야 명시적으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
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0다91046 판결 이전에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대법원판결이 없었습니다.
위의 사정들 때문에 노사 양측의 잘못된 이해
위의 사정들이 주요 원인이 되어 노사 양측 모두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전제아래 임금협상을 해 왔습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는 줄 알았다면 임금체계 달랐을 것
만약 노사가 임금협상 당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다면, 해당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됨을 전제로 기본급과 수당 등의 인상률을 조정하고 지급형태나 조건 등을 변경하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 총액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대법원 판단의 핵심일 것 같습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는 줄 알았다면, 현재와 같은 임금체계(기본급은 낮고 이를 정기상여금으로 보전해주는 방식)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거죠. 즉, 기본급을 높이고, 정기상여금은 낮추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통상임금 소급청구 인정하게 되면 발생하는 문제
이러한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채 노사 양측이 합의 당시 상호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법리적 사유를 들어 사용자에게 정기상여금이 포함된 통상임금을 토대로 한 추가적인 법정수당 지급의무를 부과한다면,
대법원은 위와 같은 노사의 가정적 의사를 무시하고 소급하여 재산정한 법정수당과 기지급된 법정수당의 차액을 지급하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근로자측은 기업의 한정된 수익 넘는 추가적인 법정수당 지급받아
근로자 측은 한편으로는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서로 양해한 전제나 기초 아래 기업의 한정된 수익을 감안하여 결정된 임금을 모두 지급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전제나 기초가 무효임을 주장하며 기업의 한정된 수익을 넘는 추가적인 법정수당을 지급받게 되고,
노사 양쪽에 피해가 갈 수 있어
반면에 사용자 측은 노사합의를 신뢰하여 이를 기초로 수지 균형을 맞추며 기업을 경영하여 오다가 예측하지 못하였던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되고, 그로 인하여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
노사 양쪽에 피해가 가게 될 수도
이는 상호 신뢰를 기초로 하여 노사합의를 이루어 자율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온 노사관계에 있어 예기치 않은 사유로 서로 간의 신뢰기반을 깨뜨리고 노사가 지향해 온 상생관계를 해치는 행위로서 궁극적으로는 근로자의 근로환경이나 근로조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기업의 재정적 파탄으로 이어져 일자리의 터전을 상실할 위험도 초래하는 등 노사 양쪽 모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한국지엠에도 신의칙을 적용할 특별한 사정 존재
임금협상 및 산정 방식
특정 수당만 통상임금에 포함
피고와 전국금속노동조합 지엠대우자동차지부(이하 ‘노동조합’이라고 한다)는 기본급, 근속수당, 가족수당(본인 분 1만 원), 라인수당간A, 정비5단계수당5, 복지후생수당을 통상임금 산정의 기초임금으로 하기로 합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산입 안함
이 사건 정기상여금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이를 통상임금 산입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임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임금협상해 옴
피고와 노동조합은 임금협상을 하면서 임금 총액을 기준으로 기본급 등의 인상률과 각종 수당의 증액 등을 정하였던 것으로 보임
정기상여금은 특정수당 및 기본급의 700%
이 사건 정기상여금은 기본급에 근속수당, 라인수당간A, 정비5단계수당5, 복지후생수당을 합산한 금액의 연 700%로 산정되는데,
앞서 본 통상임금의 산정방식과 이 사건 정기상여금의 산정방식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 통상임금의 액수는 노사합의로 정한 통상임금의 액수를 훨씬 초과할 여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으면 실질임금 인상률이 노사양해보다 훨씬 높아져
피고는 생산직 근로자만 11,000여 명에 달하고,
생산직 근로자의 경우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 초과근로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사건 정기상여금이 노사합의로 정한 통상임금 산정 기초임금의 연 700%에 달하는 규모인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 피고가 추가로 부담하게 될 초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을 비롯한 법정수당은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협상의 자료로 삼은 법정수당의 범위를 현저히 초과하고,
근로자들이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받게 될 경우 그들의 실질임금 인상률은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상호 양해한 임금인상률을 훨씬 초과할 여지가 있어 보임
근로자 주장대로 하면 한국지엠으로서는 예기치 못한 재정적 부담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와 노동조합은 이 사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신뢰하여 이 사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기초로 임금협상을 하였으며, 이러한 노사합의에도 불구하고 피고로 하여금 이 사건 정기상여금이 산입된 통상임금을 토대로 법정수당을 재산정한 다음 이미 지급한 법정수당과의 차액을 추가 지급하도록 할 경우
피고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되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볼 여지가 있음
원심이 더 살펴보아야 하는 내용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을 더 심리하여, 원고가 주장하는 대로 정기상여금을 포함하여 통상임금을 재산정하고 이를 기초로 법정수당을 재계산한 뒤 기지급된 법정수당과의 차액을 소급청구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였습니다.
- 피고와 노동조합의 임금협상 실태
- 이 사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피고가 부담하게 될 추가 법정수당액 및 원고들을 포함한 생산직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인상률,
- 피고의 재정 및 경영상태 등
사견
작년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올 당시에 이 사건은 이미 상고가 되어 있었고 상고이유서 제출기한도 지났을텐데 신의칙 항변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이미 신의칙 논리가 사측에서는 공유하고 있던 논리였던 것 같습니다. (2014. 2. 7. 피고 대리인이 상고이유서 보충서를 접수하긴 했는데, 여기에서 처음 신의칙 항변을 주장했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파기환송심에선느 회사의 재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