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하여 근로자가 1인 시위 등을 하는 경우가 있고, 회사에서는 이를 막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근로자의 시위를 금지하여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에 대하여, 회사의 명예보다 근로자의 표현의 자유를 필요할 보호성이 더 크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하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근로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것에 대하여 기각결정을 받은 상태에서 이번 법원의 판결이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이 됩니다.
사건 내용(법원에서 인정한 사실)
해고가 반드시 부당하여야만 시위가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정당한 해고로 판명나기 전에는(이에 대한 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기 전에는), 회사를 직접 상대방으로 하여 해고가 부당하다라는 표현은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설령 정당한 해고로 판명이 난 뒤에라도, 언론 등을 부당한 해고라고 개인적으로 주장하는 것까지 금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회사의 명예가 실추된다면, 표현의 내용에 있어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는지 신중히 따져서 시위를 금지하게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까지 보호할 수는 없겠지요).
아래에서는 해고의 사유가 정당한지에 대하여는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법원이 인정한 사실만 요약해서 옮기겠습니다(목차를 달고 불필요한 내용은 생략하였습니다).
해고까지 이르게 된 경위
근로자의 전적1 및 전적과정에서 사직원의 제출
- 근로자는 2년 정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계열사로 전적하여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직원(사직 사유는 ‘계열사 전출’로 기재되어 있다)을 제출하였다.
근로자의 항의 및 회사의 입장
- 근로자는 전적된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몇 주 뒤 ‘근로자은 부당한 강요에 의하여 사직서를 썼을 뿐 이 사건 전적에 동의한 적이 없으므로 이 사건 전적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하였고, 전적을 권유한 상급직원은 ‘이 사건 전적은 근로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기하여 이루어진 정당한 것이다’라고 답변하였다.
근로자에 대한 업무 미할당
- 이후 근로자에게는 구체적인 업무가 부과되지 아니하였다(이에 대하여 회사는 근로자가 그 무렵부터 임의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등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여 불가피하게 근로자의 업무를 이관하였다고 주장하나, 근로자는 자신의 업무를 이관시킴으로써 사실상 근로자에게 아무 업무를 주지 않는 ‘대기발령에 준하는 상태’를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로자의 비정상적 근무
- 근로자는 이후 세 달 정도 출근을 한 다음에 업무용 컴퓨터에는 로그인하지 않은 채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사 밖으로 나가 자리를 비우는 등의 행위를 반복하였다(이에 대하여 회사는 근로자가 허락 없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근로자는 회사 외부에서 영업활동 등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로자에 대한 해고
- 이에 회사는 근로자에게 ‘무단결근 등 근태불량 과 관련하여 회의실에서 인사위원회를 개최한다’고 통보하였고, 근로자는 출석하여 무단결근을 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인사위원회는 근로자를 해직하기로 의결하고 같은 날 근로자에게 이 결과를 통보하였다
해고 이후의 시위에 이르게 된 경위
근로자의 회사 이메일 발송
- 근로자는 해직 통보를 받은 다음 업무 이메일 계정을 이용하여 임직원들에게 ‘부당해고로 하루 만에 잘린 구성원의 절규’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하였는바, 그 이메일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회사가 부당하게 전적시켰고 전적을 권유한 상급직원이 근로자를 사내 왕따로 만들었으며, 근로자를 대기발령에 준하는 상태로 만든 후 사표를 제출할 것을 종용하였고, 현재 회사에서는 정당한 이유 없는 권고사직과 부당해고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나아가 근로자는 인사위원회 직전 사직서를 작성할 것을 협박받기도 하였는바, 이러한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노동조합이라는 형태를 이용하여 다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근로자의 1인 시위 및 이에 대한 회사의 주지
- 근로자는 지인 1명과 회사 회장이 입원 중인 병원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피켓을 드는 행위는 지인이 하였고 근로자은 인근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는데, 회사 직원을 포함한 2명이 근로자 일행을 뒤따라가기 시작했고 이에 근로자이 이들을 경찰에 신고하였으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들에게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조성’의 이유로 범칙금을 부과하였다
- 이에 대하여 회사는 근로자 일행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것을 우연히 본 회사 직원이 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하여 이를 지켜보다가 근로자 일행이 피켓을 들고 다른 장소로 이동 하기에 약 30m를 따라간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근로자는 약 300m에 달하는 회사들의 조직적인 미행·사찰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근로자의 민원 제기
- 그 후 근로자는 청와대 신문고에 회사가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자신을 미행하고 있어 그 진상을 파악하여 달라는 취지의 민원을 제기하였고, 회사 부회장에게 회사 구성원에 대한 미행·사찰을 중단하고, 부당한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발송하였다.
근로자의 문자메시지 발송
- 근로자는 회사 임직원들에게 ‘비상경영체제의 회사 임직원께.. http://goo.gl/○○’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였고, 며칠 뒤 ‘회사 구성원 여러분께 추운겨울에 인사!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 등에 즈음하여 http://goo.gl/○○’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였는데, 위 각 문자에 포함되어 있는 웹페이지 주소를 누르면 회사들을 비롯한 회사 계열사 등이 경영상 긴박한 사유 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고, 회사 임직원이 자신을 포함하여 임직원들을 미행·사찰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회사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근로자가 작성한 글이 게시된 블로그 화면이 나타난다.
근로자가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기각
- 근로자는 회사를 상대로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었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었다.
회사의 주장
- 이 사건 전적과 근로자의 징계해고는 모두 정당하고, 근로자가 주장하는 내용은 모두 허위인데, 근로자는 마치 위와 같은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공표하여 회사의 명예, 신용 등 을 해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 근로자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회사들의 명예, 신용 등을 침해할 것을 공언하고 있고 이러한 행동으로 앞으로 회사들의 영업에 중대한 지장이 초래될 우려가 있으므로, 회사들은 인격권(명예권) 및 영업권에 기초하여 근로자의 시위를 금지하여 달라는 가처분 결정을 구한다.
인격권을 근거로 시위를 금지하기 위한 법리
표현행위의 사전 억제는 원칙적으로 허용 안됨
- 표현행위에 의하여 명예의 침해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에도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억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검열을 금지하는 헌법 제 21조 제2항의 취지에 비추어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
- 다만 그와 같은 경우에도 그 표현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며, 또한 피해자에게 중대하고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허용된다.2
사전 억제가 허용되기 위한 요건 : 허위사실 + 개인적 이익
회사가 근로자에게 표현행위의 사전금지를 구하는 것이 허용되기 위하여는 근로자의 행위가
- 진실한 사실이 아니거나
-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진실한 사실’이란
- ‘진실한 사실’이라고 함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서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하고,
‘공공의 이익’이란
‘공공의 이익’이라 함은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 성원 전체의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되고 주요한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부 수적으로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하여도 무방하다3
사전 억제가 허용되기 위한 요건 : 명예권이 우월한 상황 +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명예권)이라는 두 가치를 비교· 형량하여 인격권(명예권)이 표현의 자유보다 우월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 피해 자에게 중대하고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표현 행위 사전 억제의 허용을 위한 소명책임
- 기본적으로 이를 주장하는 회사에게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4
이에 대한 소명정도
나아가 소명의 정도는 표현의 자유의 사전금지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점에 비추어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처분은 ‘소명’의 정도만 요구되는데, 이는 본안소송에서 요구되는 ‘증명’보다 약한 수준입니다. 위 판결은 ‘소명’이라고 하더라도 엄격하게 보겠다는 취지입니다.)
법원의 판단 – 시위를 사전에 억제하여서는 안 됨
법원은 표현 내용을 나누어 판단하였는데, 근로자가 행한 모든 표현에 대하여 사전에 억제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나누어서 볼까요.
부당해고를 당하였다는 부분
- 최소한 회사나 임직원 등의 공통된 관심사로 볼 수 있으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이다.
- 비록 근로자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기각되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가 현재까지도 자신에 대한 징계해고 및 그 기초가 된 무단이탈 사실을 다투고 있는 상황인 점(실제로 문제된 시점에는 최소한 출근은 하였다가 사무실을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 근로자은 외근을 하였다거나 사실상 업무에서 배제되어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근로자가 주장하는 표현 내용이 근거가 전혀 없는 내용이라거나 표현 방법이 수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욕적인 것 등에 해당하지는 않는 점 등을 고려할 때
- 현 단계에서 확정되지 않은 노동위원회의 판정만을 들어 근로자으로 하여금 ‘부당해고를 당하였다.’라고 주장하는 것까지 사전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은 근로자에게 속한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해당할 소지가 있고, 회사들의 인격권(명예권)과 비교·형량하여 보더라도 회사들의 인격권(명예권)이 더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부당전적, 대기발령, 사표제출종용, 부당한 구조조정이라고 표현한 부분 등
-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로 볼 수 있는데다가, 회사들이 제출한 소명자료만으로는 위 각 주장이 허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 나아가 무엇보다 이 부분 각 표현행위는 ‘평가’나 ‘의견표명’에 더 중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즉, 1) 근로자가 전적이 된 사실은 다툼이 없으나 이것이 ‘부당 전적인지 여부’는 다툼이 있고, 2) 근로자에게 약 2달간 사실상 업무가 부여되지 않았던 사실은 다툼이 없으나 이것이 ‘대기발령에 준하는 상황인지 여부’는 다툼이 있으며, 3) 근로자가 사직서 제출을 권유받은 사실 역시 다툼이 없으나 이것이 ‘강압적으로 사직서 제출을 종용받은 것인지 여부’는 다툼이 있고, 4) 회사측이 조직을 재편하고 인력을 재배치하면서 일부 근로자가 사직하는 일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은 다툼이 없으나 이것이 ‘구조조정을 통해 생존권을 위협하고 경영상 긴박사유가 아닌 권고사직이 만연하는 것인지 여부’는 다툼이 있는데, 위와 같이 다툼이 있는 부분은 평가나 의견표명적 요소에 중점이 있는 부분이다.
- 근로자로 하여금 이러한 평가 내지 의견표명적 표현행위 자체를 사전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악의적 소문으로 근로자를 ‘사내 왕따‘로 만들었다는 부분, 회사가 미행하고 있다는 부분
- 회사들의 소명자료를 보더라도 이 부분이 허위사실이라고 볼 자료가 없는데다가, 오히려 근로자의 표현방식에 다소 과장된 측면은 있으나 위 표현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하는 사정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
결론
회사 앞 시위는 회사의 인격권과 근로자의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영역입니다. 이와 같이 사인끼리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 이를 비교형량하여 어느 권리를 보호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시위를 금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사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개인의 인격 발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구성원리)을 감안하여 그 입증의 정도 등에 관하여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